학교라는 ‘닫힌 사회’: 왜 왕따와 학폭은 사라지지 않는가?

텅 빈 학교 복도 창문으로 햇살이 들어오지만, 한쪽 구석에 한 학생이 외롭게 그림자 속에 앉아 있고 다른 학생들이 복도 저편에서 그를 바라보며 속삭이는 장면.

학교라는 ‘닫힌 사회’: 왜 왕따와 학폭은 사라지지 않는가?

침묵의 카르텔, 교실의 비극.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교 폭력, 소위 '학폭'과 '왕따'는 사라지지 않는 유령처럼 우리 곁을 맴돌고 있습니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끔찍한 사건들은 단순한 ‘아이들 싸움’으로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병폐를 드러냅니다. 1990년대부터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한 이 문제는 수많은 대책과 법률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왜 학교라는 공간은 폭력이 당연시되는 '닫힌 사회'가 되었으며, 이 잔인한 고리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개인과 가정: 폭력의 씨앗은 어디서 오는가

결핍과 학습의 대물림. 모든 폭력의 시작은 가해 학생 개인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충동성, 공격성, 공감 능력 부족 등은 가해 학생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심리적 특성입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는 욕구나, 반대로 약해 보이지 않으려는 두려움이 폭력으로 발현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개인의 '악함'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많은 연구는 가정환경이 폭력성 발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합니다. 가정 내 폭력을 경험하며 자라거나, 부모의 무관심 혹은 과잉보호 속에서 제대로 된 훈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왜곡된 방식으로 감정을 표출하고 관계를 맺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결국 가정에서부터 시작된 결핍과 학습된 폭력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악순환의 씨앗이 됩니다.

학교 시스템의 붕괴: 방관자인가, 공범인가

무너진 교권과 책임의 공백. 과거 학교는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의 인성과 사회성을 지도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는 입시 위주의 무한 경쟁 체제 속에서 교육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입니다. 교권은 추락했고, 교사들은 과도한 업무와 악성 민원에 시달리며 학생들의 갈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학생의 인권만 지나치게 강조된 나머지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는 위축되었고, 문제가 발생해도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덮으려는 무사안일주의가 팽배합니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신고를 해도 비밀이 보장되지 않거나 오히려 일이 커질 것이라는 불신, 그리고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이는 학교가 학생들을 보호하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폭력을 용인하고 방치하는 ‘공범’이 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사회적 무관심과 뒤틀린 인식: 우리 모두의 책임

성적 지상주의가 낳은 괴물. 학교 폭력 문제는 학교 담장 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야"라는 식의 기성세대의 안일한 인식이 폭력의 심각성을 희석시켜 왔습니다. 또한, 오직 성적으로만 학생을 평가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아이들을 극심한 경쟁과 스트레스로 내몰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좌절감과 공격성이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 분출되게 만듭니다. 

최근 유명인들의 학교 폭력 과거가 폭로되고, 가해 이력을 대입과 연계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처벌이 강화되는 추세는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처벌 강화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징계 위주의 정책이 폭력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해외 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폭력을 미화하는 미디어 콘텐츠와 개인주의가 만연한 사회 문화 역시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닫힌 사회를 열기 위한 제언

연결과 회복을 향하여. 학교 폭력과 왕따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단편적인 처벌 강화가 아닌, 복합적인 원인에 대한 다차원적 접근에서 찾아야 합니다. 첫째, 가정의 기능 회복이 시급합니다. 부모 교육을 강화하고, 위기 가정을 지원하는 사회적 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해야 합니다. 둘째, 학교는 ‘닫힌 사회’에서 벗어나 소통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교사의 권위를 회복하고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학생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 관계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 사회 전체가 생명 존중과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적이나 힘의 논리가 아닌, 한 사람의 인격과 존엄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갈 때, 비로소 학교는 진정한 배움과 성장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 모두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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