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이 폭력이 될 때: '안전이별'은 왜 신조어가 되었나
시작하는 말. 사랑의 끝을 고하는 일이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질된 사회. 우리는 언제부터 ‘안전이별’이라는 섬뜩한 신조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되었을까? 한때 관계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의미했던 '이별'은 이제 폭력과 보복의 동의어가 되어가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교제 폭력 형사 입건 건수는 2023년 13,939건에 달하며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이는 더 이상 소수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병리 현상임을 증명한다.
'내 것'이라는 착각: 소유욕이 부르는 폭력의 심리학
지배와 통제의 논리. 데이트 폭력과 이별 범죄의 기저에는 상대를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로 인식하는 왜곡된 관념이 자리 잡고 있다. 연애를 ‘지배와 소유’의 관계로 착각하는 이들은 상대방의 이별 통보를 자신의 소유물에 대한 상실이자 자존심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인식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는 보상 심리와 결합하여 이별을 거부하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관계를 되돌리려 하거나, 파괴적인 방식으로 끝맺으려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을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이별 범죄의 한 원인이라고 지적하며, 상실감을 견디지 못하는 심리가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된다고 분석했다.
솜방망이 처벌과 법의 사각지대.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법적, 제도적 대응은 여전히 미흡하다. 현행법상 교제 폭력은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와 달리 별도의 처벌법이 없어 단순 폭행이나 협박죄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이는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되어, 보복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고를 주저하게 만드는 악순환을 낳는다. 실제로 데이트 폭력 신고 건수 대비 구속률은 현저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교제폭력방지법’ 제정 논의가 수년째 국회에서 맴돌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피해자 보호에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이별은 가능한가: 관계의 재정의를 향하여
새로운 관계 맺기의 필요성. 그렇다면 이 잔인한 이별의 시대에 ‘아름다운 이별’은 그저 불가능한 이상일 뿐일까? 전문가들은 건강한 관계의 끝은 건강한 관계 맺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소유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서로의 선택을 인정하는 성숙한 인식이 전제될 때 비로소 평화로운 이별이 가능하다. 헤어짐을 결심했다면, 감정적인 호소보다는 명확하고 단호하게 의사를 전달하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충분히 사랑했던 시간에 대한 감사를 표하며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은 서로에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될 것이다.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는 안전망. 궁극적으로 안전한 이별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교제 폭력의 특수성을 고려한 처벌 강화와 피해자 보호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의 실효성을 높이고,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보호와 심리 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어릴 때부터 관계의 본질과 상호 존중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여 폭력적인 연애관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이별이 더 이상 누군가의 목숨을 위협하는 공포가 아닌, 삶의 한 과정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