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법소년의 역설: 보호라는 이름의 잔혹함,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깨진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어두운 배경 중앙에 낡고 해진 법전이 놓여 있고, 그 위로 어린아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법과 보호의 경계가 무너진 위태로운 상황을 암시하는 이미지.

촉법소년의 역설: 보호라는 이름의 잔혹함,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서문의 칼날.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왜 눈을 가리고 있을까? 법이 구현하고자 하는 가치가 만인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상징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촉법소년'이라는 이름 아래, 디케의 안대는 한쪽 눈을 교묘히 가린 채 특정 연령대의 가해자에게만 관용을 베푸는 편파적인 가리개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깊어지고 있다. 선의로 포장된 보호의 논리가 오히려 피해자에게는 견딜 수 없는 잔혹함으로, 사회 전체에는 치유할 수 없는 불신의 상처로 작용하는 역설. 우리는 지금 법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본질은 단순한 연령 하향 논쟁을 넘어선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미성숙'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교화'라는 이상의 실현 가능성을 얼마나 맹신하고 있는지, 그리고 '피해자의 고통'을 공동체의 책임으로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촉법소년 제도는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약 70년간 유지되어 온,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형사처벌을 면제해 주는 법적 장치다.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소년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이들은 형사처벌 대신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게 된다. 교화와 재사회화라는 숭고한 이념에서 출발했지만, 그 이념의 그림자는 예상보다 훨씬 길고 어둡게 드리워지고 있다.

이상과 현실의 균열: 통계가 드러내는 냉혹한 진실

법의 이상은 현실의 데이터 앞에서 힘을 잃는 경우가 많다. 촉법소년 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적 위험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그 위험이 통계적으로 명확히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촉법소년 범죄의 증가세는 단순한 우려를 넘어 경고 수준에 이르렀다.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촉법소년 검거 건수는 2021년 1만 1,677건에서 2023년 1만 9,653건으로 급증했으며, 2024년에는 마침내 연간 2만 건을 돌파했다. 이는 불과 3년 사이에 범죄 건수가 거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소년 인구는 감소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범죄는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범죄의 질적 변화. 양적 팽창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범죄의 흉포화, 대담화다. 과거의 소년범죄가 우발적인 비행의 성격이 짙었다면, 현재는 성인 범죄를 모방하거나 능가하는 계획적이고 잔혹한 양상을 보인다. 2022년과 2024년을 비교했을 때, 강간·추행과 같은 성범죄는 58.5%나 폭증했으며, 절도와 폭력 범죄 역시 각각 32.3%, 19.6% 증가했다. “우리는 사람을 죽여도 교도소에 가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10대들의 모습은, 법의 관용이 어떻게 그들을 ‘법 위의 존재’로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법의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교화와 계도를 목적으로 하는 소년법의 입법 취지는 무색해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현재의 촉법소년 제도가 '보호'라는 미명 아래 더 큰 사회적 위험을 잉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피해자의 눈물과 공동체의 불안을 담보로 한 교화의 이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통계는 차갑지만, 그 차가움 속에 문제의 본질이 숨어 있다.

보호의 역설: 가해자 중심주의가 낳은 비극

소년법 제1조는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 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한다. 목적 자체는 숭고하다. 그러나 이 조항에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피해자’의 존재다. 가해자의 교화와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법의 시선은 필연적으로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그들의 고통을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하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법인가. 촉법소년 범죄의 피해자는 이중의 고통을 겪는다. 가해 행위로 인한 1차적 피해는 물론, 가해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에서 오는 2차적 정신적 충격과 무력감이다. 가해자는 최장 2년의 소년원 송치라는 비교적 가벼운 보호처분으로 사건이 종결되는 반면, 피해자는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불균형은 정의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근본적으로 침식시킨다. 법이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의 방패막이 역할을 할 때, 시민들은 법의 권위를 의심하고 사적 복수의 유혹에 흔들리게 된다. 이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가해자 중심의 사법 시스템이 소년범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즉, ‘어리다는 것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이는 진정한 반성과 교화의 기회를 박탈하고, 재범의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소년범의 재범률은 3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 결코 낮지 않다.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관용이 결국에는 소년 자신에게도, 사회에게도 독이 되는 ‘보호의 역설’이 발생하는 것이다.

촉법소년 관련 주요 통계 변화 (2021-2024)
연도 총 검거 건수 증가율 (전년 대비) 주요 범죄 유형 (2024년 기준) 비중
2021 11,677건 - 절도 50.0%
2022 16,435건 +40.7%
2023 19,653건 +19.6%
2024 20,814건 +5.9%
2024년 기준 기타 주요 범죄 폭력 23.4%
강간·추행 4.2%

해묵은 논쟁을 넘어서: 처벌과 교화의 이분법을 해체하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가장 뜨거운 감자다. 정부와 여론의 다수는 연령 하향을 지지하며, 이는 흉포화되는 소년범죄에 대한 현실적인 대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일부에서는 연령 하향이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반하며, 실질적인 범죄 예방 효과 없이 낙인 효과만 키울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 지루한 찬반 논쟁의 프레임 자체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문제는 처벌이냐, 교화냐의 양자택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해법을 향한 제언. 첫째, 책임의 단계적 재구성이 필요하다. 현행법처럼 '처벌'과 '비처벌'이라는 이분법적 접근이 아니라, 범죄의 중대성과 가해자의 책임 능력에 따라 처벌과 보호의 수준을 세분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인과 다름없는 계획적이고 잔혹한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연령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사안의 본질에 따라 형사처벌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유연한 법 적용이 요구된다. 이는 국제적인 추세이기도 하다.

둘째, 교화 시스템의 근본적인 혁신이 시급하다. 현재 소년원과 보호관찰 제도는 인력과 전문성 부족이라는 만성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가해 청소년 한 명 한 명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 및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확충하고,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처벌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는 현재의 교화 시스템은 이상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중심의 사법 절차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소년보호사건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 진술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손해배상 및 정신적 회복을 위한 국가적 지원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가해자의 인권만큼 피해자의 인권도 중요하다는 당연한 명제가 법의 모든 과정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법의 균형추는 가해자의 미래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현재와 미래에도 동일한 무게를 두어야 한다.

결론: 무너진 저울을 바로 세울 용기

촉법소년 제도의 역설은 우리 사회의 법과 정의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보호'라는 온정주의적 시각이 어떻게 '정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지를 냉철하게 직시해야 할 때다. 이제는 가해자의 나이 뒤에 숨어 피해자의 고통을 외면하는 값싼 온정을 거두어야 한다. 법의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그것을 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무다.

물론, 미성숙한 존재에 대한 교화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 교화는 엄중한 책임의 자각 위에서만 비로소 가능하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훼손될 때, 사회는 불신과 분열의 늪으로 빠져든다. 촉법소년 문제의 해법은 연령을 한두 살 조정하는 미봉책에 있지 않다. 가해자에게는 범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피해자에게는 온전한 회복을, 그리고 사회에는 정의가 살아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되돌려주는 것.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보호와 정의가 조화를 이루는, 더 안전하고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디케의 안대는 다시 제자리를 찾아야만 한다.



Editor: JGM A.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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