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생존의 위협이다: 청년들은 왜 '비혼'이라는 갑옷을 입는가

서울의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좁은 원룸 창가에 한 젊은이가 홀로 서서 도시의 불빛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표정에는 고독과 함께 미래에 대한 깊은 고뇌가 담겨 있으며, 방 안에는 노트북 불빛만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다.

결혼은 생존의 위협이다: 청년들은 왜 '비혼'이라는 갑옷을 입는가

한때 인생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던 결혼은 이제 한국의 청년 세대에게 가장 급진적이고, 때로는 무모하기까지 한 선택지가 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도발적인 구호는 더 이상 일부의 냉소적인 독백이 아니라, 생존의 벼랑 끝에 선 세대의 처절한 현실 인식을 담은 집단적 외침으로 변모하고 있다. 오늘날 청년들에게 ‘비혼(非婚)’은 단순히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라이프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불안정한 고용, 천정부지로 솟은 주거 비용, 그리고 숨 막히는 경쟁 사회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생존 전략’이자, 합리적 갑옷이다. 이 글은 결혼이 어떻게 낭만적 통과의례에서 생존의 위협으로 전락했는지, 그리고 비혼이 왜 이 시대 청년들의 가장 논리적인 선택이 되었는지를 구조적 모순 속에서 심층적으로 파헤치고자 한다.

제1장: 낭만의 종언, 경제적 장벽 앞에 선 사랑

차가운 계산기가 된 프러포즈. 사랑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던 시대는 끝났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결혼은 철저히 경제적 현실에 기반한 계약 관계에 가깝다. 통계는 이러한 현실을 냉정하게 증명한다.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 ‘결혼자금 부족’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다. 이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하지만, 특히 남성에게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미혼 남성의 38%가 자금 부족을, 12.4%가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비혼의 이유로 꼽았다. 이는 ‘남성은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전통적 관념이 여전히 사회적 압력으로 작용하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살인적인 집값과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로 대표되는 과도한 결혼식 문화는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청년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의 굴레를 씌운다. 결국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닌, 양가의 자산을 합쳐 부동산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전략적 제휴’로 변질되거나, 혹은 애초에 불가능한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개인의 행복과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가치관의 확산은 필연적이다. 불안정한 미래를 담보로 결혼이라는 거대한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판단이 된 것이다.

제2장: 젠더 갈등의 최전선, 결혼이라는 제도

다른 꿈을 꾸는 남과 여. 결혼에 대한 인식은 성별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2024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혼 남성은 41.6%인 반면, 미혼 여성은 26%에 불과했다. 이 15.6%포인트의 격차는 결혼 제도를 바라보는 남녀의 근본적인 시각차를 드러낸다. 남성들이 경제적 안정을 결혼의 선결 과제로 인식하는 동안, 여성들은 결혼이 가져올 경력 단절과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의 희생을 더 큰 위협으로 느낀다.

미혼 여성이 결혼을 꺼리는 두 번째 이유는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19.1%)’이다. 이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고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서, 더 이상 결혼을 생존의 필수 조건으로 여기지 않게 된 사회 변화를 반영한다. 오히려 결혼은 출산과 육아, 시댁과의 관계 등 전통적인 성 역할의 굴레를 강요하는 제도로 인식되며,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여겨진다. 일과 가정의 양립이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비혼은 자신의 정체성과 미래를 지키기 위한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다.

제3장: '선택'이라는 환상, 비자발적 비혼자들의 항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꿈. 우리는 종종 비혼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포장하지만, 그 이면에는 결혼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비자발적 비혼자들의 좌절이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개인주의적 가치관 때문에 결혼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설정한 최소한의 경제적, 사회적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해 결혼 시장에서 비자발적으로 밀려난 이들이다. 대전세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청년들이 이전 세대보다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이루기 힘든 현실이 비자발적 비혼의 증가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이들에게 결혼은 ‘사랑’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온다. 안정된 소득과 내 집 마련이라는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해결되지 않는 한, 결혼과 출산, 양육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사치가 된다. 정부가 신혼부부 주택 지원이나 출산 장려금 같은 정책을 쏟아내지만,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이들에게 비혼은 선택이 아닌, 냉혹한 현실이 강요한 결과이자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귀결이다.

미혼 남녀의 비혼 사유 비교 (2024년 통계청 사회조사 기반)
순위 미혼 남성 비율 미혼 여성 비율
1 결혼 자금이 부족해서 38.0% 결혼 자금이 부족해서 25.0%
2 고용 상태가 불안정해서 12.4%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19.1%
3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 출산·양육 부담 -
4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해서 - 고용 상태가 불안정해서 -

*참고: 위 표는 주요 비혼 사유를 나타내며, 전체 응답 항목과 비율은 원자료와 다를 수 있음.

결론: 제도를 넘어, 인간다운 삶을 향한 질문

결혼해도 괜찮은 사회를 향하여. 청년 세대의 비혼 현상은 단순히 인구 감소나 국가 소멸의 전조 증상으로만 해석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실패를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치열한 경쟁,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청년들은 결혼이라는 전통적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다. 비혼은 이 사회가 더 이상 개인의 행복을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강력한 신호이며,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요구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법은 단순히 결혼을 장려하는 정책이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금전적 지원에 있지 않다. 청년들이 “결혼할 수 없는 사회”가 아닌, “결혼해도 괜찮은 사회”라고 느낄 수 있는 근본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안정적인 일자리, 감당 가능한 주거, 일과 삶의 균형, 그리고 성 평등한 문화가 보장될 때, 비로소 청년들은 비혼이라는 갑옷을 벗고 타인과 함께 미래를 꿈꿀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이들의 선택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모든 구성원이 공정하게 경쟁하고,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그 대답을 찾지 못하는 한, 비혼은 선택이 아닌 유일한 생존 전략으로 남을 것이다.



Editor: JGM A.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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