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M&A)성공의 역설: 200조 수익에도 국민연금은 왜 죄인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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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금 고갈'부터 '정치 압박'까지, 국민연금의 4중고 |
200조 원. 숫자의 무게가 현실감을 마비시킬 정도의 경이로운 수익이다. 대한민국 국민 노후의 마지막 보루인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거둔 이 전례 없는 성과는 마땅히 찬사받아야 할 금자탑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은 축포가 아닌 돌팔매질이며, 격려가 아닌 조리돌림이다. 성공의 정점에서 역설적으로 죄인이 되어버린 국민연금의 비극은, 단지 하나의 기관이 겪는 수난을 넘어 한국 사회가 장기적 비전과 전문성을 어떻게 질식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통렬한 자기 고발이다.
핵심은 홈플러스 상환전환우선주(RCPS) 투자 건이다. 전체 기금의 1%에도 미치지 않는 이 단일 사안을 빌미로 국회, 감사원, 검찰, 금융감독원 등 국가의 모든 권력기관이 달려들어 먼지를 털고 있다. 이는 마치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 야구팀 감독을, 정규시즌 중 한 경기에서 나온 병살타 하나를 문제 삼아 청문회에 세우는 희극과 같다. 투자의 본질은 확률과 시간의 예술이다. 100%의 성공률을 추구하는 투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이를 요구하는 것은 전문성에 대한 몰이해이자 포트폴리오 이론의 근간을 부정하는 행위다. 국민연금은 지난 수십 년간 연평균 7%에 가까운 누적 수익률로 그 전문성을 증명해왔다. 200조 원의 수익은 이러한 장기적 철학이 맺은 결실이지, 우연한 행운의 산물이 아니다.
정치적 근시안이 낳은 마녀사냥
문제의 본질. 이번 사태의 핵심은 금융적 실패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다. 국민연금이라는 거대한 저수지는 언제나 정치권에겐 매력적인 사냥터였다. 그들은 복잡한 금융 구조나 장기적 운용 전략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대중의 분노를 자극할 ‘실패’라는 단어, 그리고 ‘책임자’라는 손쉬운 희생양만이 필요할 뿐이다. 홈플러스 투자 건은 바로 그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소재였다. 원금 손실 가능성이 낮고, 이미 상당 금액을 회수했으며, 해당 운용사(MBK파트너스)와의 다른 펀드에선 수천억 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사실은 의도적으로 무시된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노후 자금을 잃었다는 선정적 프레임이다.
이러한 ‘성과에 기반한 처벌’은 기금 운용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독을 퍼뜨린다. 단기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운용역들은 점차 몸을 사리게 된다. 혁신적인 대체투자는 기피 대상이 되고, 국채와 같은 안전자산에만 기금을 묶어두려는 유인이 커진다. 이는 장기적으로 기금의 수익률을 갉아먹고, 연금 고갈 시점을 앞당기는 자해행위다. 정치권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국민 전체의 장기적 노후를 담보로 잡는, 지극히 무책임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아래 표는 현재 국민연금이 처한 현실과 정치적 서사의 간극을 명확히 보여준다.
| 평가 항목 | 기금운용의 현실 | 정치적 프레임과 대중적 오해 |
|---|---|---|
| 2024년 수익 성과 | 약 200조 원의 사상 최대 수익 달성 | 단일 투자(홈플러스)의 잠재적 손실만 부각 |
| 투자의 본질 | 장기적 관점의 분산 투자(포트폴리오) | 모든 개별 투자가 100% 성공해야 한다는 비현실적 기대 |
| 인재 관리 | 글로벌 수준의 전문 운용인력 확보가 핵심 | 고액 연봉을 받는 '방만 경영' 집단으로 묘사, 압박 |
| 핵심 리스크 | 운용 독립성 훼손 및 과도한 정치적 개입 | 금융적 판단 실패가 유일한 리스크인 것처럼 왜곡 |
보이지 않는 비용: 인재 유출과 전략의 마비
가장 심각한 폐해. 지금 이 순간에도 벌어지고 있는 가장 심각한 손실은 장부상에 기록되지 않는다. 바로 대한민국 최고의 금융 인재들이 느끼는 깊은 무력감과 좌절이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운용하며 살얼음판 같은 시장과 싸우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와 자율성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이 비전문가들의 호통과 잠재적 범죄자 취급이라면, 누가 국가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걸겠는가. 이미 상당수 핵심 인력들이 조직을 떠나 해외 운용사로 떠나고 있다는 소식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는 단순한 이직이 아니라, 수십 년간 쌓아온 대한민국의 금융 운용 역량이 해외로 유출되는 두뇌 유출(Brain Drain) 현상이다.
전략적 마비는 더욱 심각하다. 대체투자는 주식 및 채권과 상관관계가 낮아 포트폴리오 안정성을 높이고 장기 수익률을 제고하는 필수적인 자산군이다. 그러나 홈플러스 건으로 인해 국민연금의 대체투자 부서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빠졌다. 올해 사모펀드 출자 사업을 진행하지 않기로 한 결정은 그 상징적인 예다. 이는 마치 자동차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엔진 튜닝을 하다가 작은 실수가 나왔다고 해서, 아예 엔진을 끄고 차를 밀고 가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보수화, 경직화는 결국 국민의 노후 자산 증식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마이더스의 손이 아닌, 시스템을 신뢰하라
인식의 전환. 우리는 국민연금에 신화 속 ‘마이더스의 손’이 되기를 강요하고 있다. 모든 투자가 황금으로 변하기를 바라는 것은 유아기적 환상에 불과하다. 우리가 신뢰해야 할 것은 특정 개인의 천재성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성공의 데이터를 통해 정교하게 구축된 리스크 관리 시스템과 장기 운용 철학이다. 국민연금은 지난 30여 년간의 역사를 통해 그 시스템의 유효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단 하나의 사건으로 전체 시스템의 가치를 폄훼하는 것은 지적인 오만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단기적인 정치적 이득을 위해 국가 백년대계의 근간을 흔드는 소모적인 ‘조리돌림’을 멈출 것인가. 아니면 눈앞의 작은 흠집에 집착하다 결국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을 범할 것인가. 국민연금에 필요한 것은 더 세밀한 족쇄나 더 강력한 처벌이 아니다.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운용의 독립성을 지켜줄 견고한 방패, 그리고 긴 호흡으로 시장을 이겨낼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는 사회적 신뢰다. 200조 원이라는 숫자는 단순한 수익이 아니라, 바로 그 신뢰가 얼마나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Editor: JGM A.J.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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