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신뢰의 위기 속 노후 보루가 될 수 있는가?

돋보기를 들고 국민연금 서류를 꼼꼼히 살피는 중년 남성의 손과 그 뒤로 보이는 흐릿한 노년의 미래 모습이 교차하는 이미지.

국민연금, 신뢰의 위기 속 노후 보루가 될 수 있는가?

서론: 불안의 그림자, 국민연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국민연금'만큼 세대 간의 시각차와 불신의 골이 깊은 주제도 드물다. 청년 세대에게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약속으로, 중장년층에게는 당장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그리고 노년층에게는 유일한 생계 수단으로 각기 다른 무게를 지닌다. 2055년으로 예측되는 기금 고갈 시점은 단순한 숫자를 넘어 사회 전체의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2025년 단행된 연금 개혁은 이러한 위기감 속에서 탄생했지만, 과연 이것이 '나의 노후'를 책임질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본 칼럼에서는 국민연금을 둘러싼 복잡한 논쟁의 실타래를 풀고, 제도의 구조적 한계와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분석하여 진정한 노후 보루로서의 역할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1. 신뢰의 균열: 왜 우리는 국민연금을 믿지 못하는가?

불신의 근원.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가장 큰 원인은 단연 '기금 고갈'에 대한 공포다.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현 세대가 납부한 보험료로 미래 세대의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 방식'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에도, '내가 낸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5.7%가 국민연금 제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이는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깊은 회의감을 보여준다.

개혁의 딜레마. 정부는 기금 고갈 시점을 늦추기 위해 2025년 개혁안을 통해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단계적으로 13%까지 인상하고, 수급 개시 연령 또한 67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러한 '더 내고 늦게 받는' 방식의 개혁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보험료율 인상에 대해 무려 73.4%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으며, 이는 가계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가 얼마나 큰지를 방증한다. 결국 재정 안정과 노후 소득 보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개혁의 노력이 오히려 세대 간의 갈등과 불신을 키우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2. 국민연금의 현주소: 이것만으로 충분한가?

기대와 현실의 간극. 국민연금만으로 안정적인 노후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실과 큰 차이를 보인다. 2024년 기준 평균 수령액은 월 62만 원 수준으로, 이는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물론 30년 이상 장기 가입하고 연금 수령을 연기하는 등의 전략을 통해 월 300만 원 이상을 받는 예외적인 사례도 등장했지만, 대다수 수급자에게 이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전체 수령자의 64%가 월 60만 원 이하의 연금을 받고 있다는 통계는 국민연금이 노후의 '주된 소득원'이 아닌 '보조 소득원'에 머물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비용. 더욱이 연금 수령액은 액면 그대로 손에 쥐어지는 돈이 아니다. 연금 소득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잃고 지역가입자로 전환되어 매달 수십만 원의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한, 국민연금은 기초연금과 달리 과세 대상이어서 세금 부담까지 고려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 즉 '순연금소득'은 더욱 줄어든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비용들은 국민연금의 실질적인 소득 보장 기능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

3. 대안을 향한 모색: 신뢰 회복과 제도 보완

국가의 책임을 명문화하라.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한 첫걸음은 국가의 지급 보장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다. 기금이 소진되더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연금을 지급한다는 명확한 신호를 시장과 국민에게 보내야만 장기적인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2025년 개혁안에 이 내용이 포함된 것은 긍정적인 변화지만, 이것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도록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과 이행 계획이 뒤따라야 한다.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수익률 제고.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산을 운용하는 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전문성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안정적인 수익률을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국민들은 기금 운용 수익률 제고를 연금 개혁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꼽고 있다. 정치적 외압이나 단기적 시장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확립하고, 대체 투자를 확대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자산 배분 전략을 통해 장기적인 수익률을 높여야 한다.

다층 노후 소득 보장 체계의 완성. 국민연금 하나만으로는 결코 충분한 노후를 보장할 수 없다. 국민연금이 최소한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이 그 위를 덮는 다층적인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특히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고 IRP(개인형퇴직연금) 계좌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하여 사적 연금 시장의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부동산을 활용한 주택연금 등 다양한 노후 소득원을 국민 각자가 자신의 상황에 맞게 설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정보 제공과 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

결론: 국민연금,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할 때

'국민연금이 나의 노후 대책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불충분하다'에 가깝다. 2025년 연금 개혁은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미봉책에 가까우며,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신뢰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국민연금을 신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으로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각자의 노후를 주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까?' 국가의 명확한 책임 보장, 기금 운용의 혁신, 그리고 다층적 소득 보장 체계의 완성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위기에 처한 국민연금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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