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힐 권리의 배신: 소년범, '깨끗한 기록'이라는 위험한 신화
서막, 지워진 기록과 지워지지 않는 기억. 우리 사회는 청소년의 과오에 대해 관대함을 미덕으로 삼는다. ‘아직 미성숙하기에’, ‘교화와 개선의 가능성이 높기에’라는 전제 아래, 소년법은 이들에게 형사처벌 대신 보호처분이라는 기회를 부여한다.
이 시스템의 정점에는 ‘전과기록이 남지 않는다’는 약속, 즉 ‘깨끗한 기록(Clean Slate)’이라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법적으로는 그렇다. 소년원 송치 기록은 범죄 경력 조회에 나타나지 않으며, 미래를 향한 걸음에 족쇄가 되지 않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이 법적 장치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죄의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이 과거의 소멸을 의미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단호히 ‘아니’라고 답하고자 한다. 오히려 ‘깨끗한 기록’이라는 개념 자체가 위험한 사회적 신화이며, 이 신화가 가해자에게는 착각을, 피해자에게는 고통을, 그리고 사회 전체에는 재범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죗값을 치렀다’는 표현을 너무나 쉽게 사용한다. 이는 마치 정해진 금액의 빚을 갚으면 모든 채무 관계가 청산되는 것처럼, 범죄와 처벌을 단순한 거래 관계로 인식하게 만든다. 하지만 범죄가 남기는 상흔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청산될 수 없다.
특히, 모든 것이 형성되는 시기인 청소년기에 겪는 범죄 피해의 경험은 피해자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법의 잉크가 마르고 기록이 삭제되는 순간에도, 피해자의 시간은 범죄가 일어난 그날에 멈춰있을 수 있다. ‘깨끗한 기록’이라는 법적 허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피해자의 존재를 투명하게 지워버린다. 가해자의 미래를 위해 피해자의 고통을 사회적 논의의 배경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이 글은 바로 이 위험한 신화의 균열을 파고들어, 처벌과 용서, 망각과 책임의 이분법을 넘어선 진정한 회복의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숫자가 드러내는 불편한 진실: 재범의 늪
우리가 소년범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당위성에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통계는 냉혹한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 ‘깨끗한 기록’과 교화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소년범의 재범률은 결코 낮지 않다. 이는 우리가 구축한 시스템이 어딘가에서 심각하게 오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법적 처벌의 기간이 끝나고 사회로 복귀한 청소년들이 왜 다시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면죄부’ 논의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통계의 경고. 최근 몇 년간의 통계는 소년범 3명 중 1명이 재범을 저지르는 현실을 보여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 재범자의 90% 이상이 처분 후 1년 이내에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이는 현재의 교화 프로그램이 이들의 행동 패턴을 바꾸는 데 실질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처벌이 끝나고 사회로 돌아오는 순간, 이들을 기다리는 것은 따뜻한 포용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냉대이며, 결국 익숙했던 범죄의 유혹에 다시 손을 뻗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법적으로는 전과가 없지만, '소년원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보이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어 이들의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현실은 청소년 범죄를 단순히 개인의 일탈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함을 보여준다.
이러한 높은 재범률은 '촉법소년 연령 하향'과 같은 처벌 강화론에 힘을 싣는 주요 근거가 된다. 실제로 흉포화되는 소년 범죄 양상을 고려할 때,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하지만 처벌 연령을 낮추고 형량을 높이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일까?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기 구금 경험은 오히려 성인기 재범 가능성을 높이고 사회 부적응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처벌 강화가 단기적인 억제 효과를 가질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기는 어렵다. 문제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처벌 이후의 삶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사회와 다시 연결할 것인가에 있다.
| 구분 | 주요 통계 | 시사점 |
|---|---|---|
| 전체 재범률 | 전체 소년범 중 재범자 비율 약 30%대 유지 | 교정 및 교화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제기 |
| 보호관찰 대상자 | 재범자의 90.4%가 처분 후 1년 이내 재범 | 사회 복귀 초기 단계의 집중적인 관리 및 지원 시스템 부재 |
| 성인 재범률 비교 | 소년 보호관찰 대상 재범률(12%)이 성인(4.5%)의 약 3배 | 청소년기 범죄 경험이 성인 범죄로 이어질 위험성 시사 |
| 범죄 유형 변화 | 강력범죄(살인, 강도, 폭력 등) 비율 증가 추세 | 범죄의 질적 흉포화에 대한 사회적 대응 필요 |
처벌을 넘어서: 회복적 사법이라는 대안적 상상력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가? 해답은 처벌과 관용이라는 낡은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 있다. ‘깨끗한 기록’이라는 법적 장치와 응보적 처벌만으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이라는 패러다임이다.
이는 범죄를 국가에 대한 법 위반으로 보는 대신, 개인과 공동체에 가해진 피해로 정의하고, 그 피해의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접근 방식이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회복적 사법의 핵심은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진정한 책임, 그리고 공동체의 참여를 통해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있다. 가해자가 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이 저절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법적 절차가 끝난 뒤에야 진짜 고통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회복적 사법은 피해자에게 사건의 해결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가해자와의 대화 모임 등을 통해 피해자는 자신의 고통을 직접 이야기하고,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이 남긴 파괴적인 결과를 직시하게 된다. 이 과정은 단순한 사과를 넘어, 가해자가 자신의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피해 회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진정한 책임의 의미. '죗값을 치른다'는 것이 단순히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2007년 소년법 개정을 통해 화해권고제도가 도입되는 등 회복적 사법을 적용하려는 노력이 시도되고 있다. 이는 가해 청소년과 피해자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실질적인 피해 회복을 논의하는 제도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가해 청소년에게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는 대신 직면하게 함으로써, 진정한 반성과 책임감을 배우게 한다. 이는 처벌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재범 방지 효과를 가질 수 있다.
결론: '깨끗한 기록'이 아닌 '책임지는 기록'으로
우리는 청소년 시절의 범죄라는 무거운 주제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잘못된 질문을 던져왔다. ‘죗값을 치렀다면 면죄부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본질을 흐린다. 이는 범죄를 '청산'할 수 있는 부채로 여기게 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며, 가해자에게는 책임의 본질을 잊게 하는 착각을 심어준다. 법이 부여하는 ‘깨끗한 기록’은 사회적 망각을 강요하는 도구일 뿐,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하면 범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가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평생에 걸쳐 책임지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이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이다. 그 해답은 ‘깨끗한 기록’이 아닌 ‘책임지는 기록’을 써 내려가는 데 있다.
이는 법적 기록의 삭제 여부를 떠나, 한 인간이 과거의 잘못을 자신의 일부로 인정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회복적 사법은 그 길을 제시하는 하나의 나침반이다.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가해자에게는 진정한 책임의 무게를 깨닫게 하며, 공동체가 이 모든 과정을 함께 지지하고 감당할 때, 비로소 재범의 고리를 끊고 진정한 사회 통합으로 나아갈 수 있다.
청소년의 과오를 법적으로 지워주는 손쉬운 길 대신, 그 과오를 끌어안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고통스럽지만 올바른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면죄부’라는 위험한 신화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고 정의롭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Editor: JGM A.J.C
Contact: 2truetwins@naver.com